가마를 뜻하는 요(窯)자는 구멍(穴)에 양(羊)을 넣고 아래에서 불(火)을 지피는 표의문자이다. 일반적으로 도기를 굽는 것을 소성(燒成), "구워서 이룬다"는 말을 쓰지만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의 문헌에 번조(燔造) 즉 "구워서 만든다"는 말을 써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형적인 반지상식 가마인 뺄불통가마를 써왔다. 옹기가마로 최적화된 가마로 볼 수 있어서 그냥 옹기가마라 부르기도 하는데 마치 굴과 같이 뚫렸다 하여 굴가마라고도 하고 가마내부가 한 통으로 되었다 해서 통가마, 언덕에 용이 엎드린 형상이라 하여 용가마라고도 부른다. 옹기가마는 약 15-30도의 경사면에 지었고 길이는 30m내외였고, 너비와 높이는 2m 내외이며 가마의 어깨부분에 40-50cm간격으로 불의 온도를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높이고 구멍을 막아버리는 창처럼 쪼갠 잘 마른 나무를 던져 넣는 창구멍이 있다. 가마를 경사지에 지은 이유는 불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듯 불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 같은 불이어도 불이 지나가는 속도가 빠르면 열도 그만큼 빠르게 올라간다. 가마 안에 열을 고르게 높이는데도 경사가 있는 가마가 효율적이었고 가마의 끝부분은 오그리고 굴뚝을 작게 만들어 열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플라스틱과 유리가 보편화 되고 식생활이 변하면서 옹기도 사람들로부터 서서히 멀어져갔다. 천오백 년이 넘는 세월을 우리네 생활 속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옹기였다. 하지만 기와와 초가와 다양한 지붕들이 가짜 슬레이트에 밀려 사라졌듯 옹기도 그리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옹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작업공간이 넓어야 하는데 도시에 있던 옹기점들은 땅값이 오르자 문을 닫기 시작했다. 점점 많은 옹기점들이 문을 닫았고 옹기가 꼭 필요한 발효음식을 만들던 사람들은 옹기를 구하기 위해 솥내 옹기점으로 찾아왔다. 우연이었지만 솥내 옹기점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도시가 커지면서 땅값이 올랐기 때문이었고 여전히 우리 문화에는 발효음식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느린 것은 느릴 뿐 나쁜 것이 아니었다. 옹기는 모양을 만들고 나면 그늘에 느리게 말려야했고 느리게 말린 옹기는 숨구멍이 터져서 발효가 필요한 음식을 느리게 발효시킨다. 조금 빠른 발효가 필요한 막걸리 독은 주둥이를 넓게 만들어 공기와 만나는 면을 열어주면 그만이다. 기름과 전기와 가스가 연료로 쓰이는 세상이 왔다 해서 옹기를 빠르게 건조시키면 숙성의 근간이 되는 숨구멍이 막혀서 옹기의 역할을 못하게 된다. 매끈한 것들 광이 나는 것들은 의심하고 투박하고 허름한 것들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냥 그렇게 투박한 옹기를 외면하는 세월이 몇 년 지속되었더라면 솥내 옹기점도 문을 닫았을지 모른다. 맥이 끊어지고 이어지고는 광기와 우연이 버무려낸 비빔밥과 비슷한 세상일지도 모른다. 하나하나 맛을 보면 짜고 달고 시고 쓰고 맵고 하겠지만 잘 비벼놓고 찰나를 기다리면 모든 맛들이 어우러져 맛있는 맛이 되는 그런 세월이 세상이지 않을까? 물은 흐르고 흘러 아래로 내려갈 것이고 이야기는 이어질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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