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가는 길

사람의 기억

매사냥은 방앗간집 처남에게로 이어지고

솔바위 2023. 12. 1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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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겨울이 찾아왔고 매가 돌아왔다. 딸아이들은 다들 시집을 가서 도시로 나갔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도시로 떠나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서 도시로 나가지 않으면 바보취급을 받기도 했다. 산골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늙고 노회한 사람들이거나 늙은 부모를 봉양해야하는 무녀리들이었다. 도시로 나간 이들은 잘 살 거라 생각했지만 산골마을에서 쌀을 가져갔고 무녀리들은 소를 팔아 도시에 사는 동생들에게 돈을 보냈다. 도시는 눈뜨고 코를 베어가는 세상이었고 숨만 쉬어도 돈이 든다고 했다. 산골에 사는 무녀리들은 무녀리의 역할을 잘 해냈다. 일하는 소가 먼저 사라졌는지 경운기가 먼저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논과 밭에서는 시끄럽게 딸딸거리는 경운기가 주인행세를 했다. 한 식구로 살아가던 소들은 논과 밭을 빼앗긴 것도 서러운데 고기 취급까지 받았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외롭고 쓸쓸할 무렵 아들보다 몇 살 많은 처남이 매사냥을 배우고 싶다며 찾아왔다. 산골마을에 돌아가던 물레방아간이 다 돌기를 멈췄지만 처남이 운영하는 도르메방앗간은 예전보다 더 바쁘게 돌아갔다. 몇 백년간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준 영모정이야 세월이 흘러도 남아 있겠지만 매사냥은 누군가에게 물려주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유산인데 처남이 찾아와 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아버지와 함께 매를 날리고 매의 눈을 뜨던 가슴 벅찬 순간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개마고원 어디 즈음에서 손자에게 매사냥을 전수해 주었으리라! 아들 같은 처남에게 진안고원의 매사냥을 물려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 내가 아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없으련만 그러지 못한다 한들 처남이라도 개마고원에서든 진안고원에서든 매사냥을 함께하는 나리 오기를 바랄뿐이다.

  처남과 겨울을 함께 나면서 매사냥을 물려주는 동안 붉은 눈의 사내는 부하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물론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하와이로 여행을 떠난 녀석처럼 붉은 눈의 사내도 아무런 반성도 없이 그냥 돌아갔다. 반성 없이 비어버린 자리에는 비슷하게 극악무도한 자가 들어앉아 수천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였다는 소식이 산골마을에 퍼졌다. 악의 연대기도 언젠가는 종지부를 찍을 날이 오겠지만 아버지의 유산은 처남에게 남겨놓으면 또 누군가에게도 이어질 것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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