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가는 길

사람의 기억

개마고원으로 떠나는 할아버지, 오랜 이별

솔바위 2023. 12. 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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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판단은 빨랐다. 며칠 동안 좋은 음식과 약으로 기력을 찾은 할아버지는 14년 전 그 날처럼 먼 길 떠날 채비를 서두르셨다. 아버지는 집안에 있는 패물들을 모조리 모아서 무명 주머니에 담았다.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며느리에게도 길 떠날 채비를 하게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북한에 새로운 가족이 있다 하셨다. 독립운동을 함께했던 동지와 결혼을 해서 아들이 둘이라 했다. 나에게는 작은 아버지가 생겼고 아버지에게는 동생이 생겼다. 할아버지께서는 갖은 세상풍파를 다 겪었을 터인데도 50대 중반으로 보기에는 너무 젊고 건강해보였다. 상처에 대한 회복력도 빨라서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관통상을 입은 옆구리가 깨끗이 나았다. 보름달이 덕태산 너머에서 올라왔다. 임포수가 징병과 징용으로, 위안부로 사람들을 끌고 가던 일본군 장교를 죽이고 마을을 떠나던 날도 이랬고 외할아버지께서 노란 다슬기를 잡아 할아버지께 드릴 생각을 했던 날에도 달이 이렇게 밝았었다. 아버지께서는 할아버지를 잘 모셔다드려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새벽에 신광재를 넘고 나면 큰길을 따라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할아버지를 따라 가라하셨다. 배부른 며느리가 걱정이긴 하지만 사람들 눈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아들과 며느리를 돌려보낼 방도를 찾아보겠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개마고원에는 텃새로 살아가는 매가 있으니 조만간에 매를 내려 보내겠다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약속을 지키셨지만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를 길을 다시 떠나신다. 아버지께서는 매처럼 속울음을 삼키셨다. 할아버지께서는 토끼털 조끼를 벗어 두고 고운 한복을 차려입으셨다. 누가 봐도 아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친지를 찾아가는 사람들로 보였다.

  전쟁이 끝나고 칠년이 지났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돌아오지 못했다. 마을사람들은 아버지께서 다녀가시고 아들이 사라지고 임포수가 돌아온 사실을 알고도 오래 전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아무 말이 없었다. 해마다 매들은 돌아왔지만 그때 그 매가 아니었고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은 켜켜이 쌓여만 갔다.

  마산 앞바다에서는 최루탄이 한 쪽 눈에 박힌 고등학생의 주검이 떠올랐다는 소식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고 아이가 왜 죽었는지 물으러 간 대학생들 수백 명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아무런 반성도 없이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고 그 자리는 독립군을 사냥하던 친일 앞잡이가 차지했다는 풍문이 돌았다. 친일 앞잡이는 미안 했다는 말 한 마디 없던 붉은 눈의 사람들을 먼저 용서하겠다며 체면도 차리지 못하고 돈을 구걸했다. 풍문은 사실이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기다림을 멈출 무렵 검은 모래 가마솥공장의 굴뚝 연기도 올라오지 않았다. 가볍고 깨지지 않는 양은냄비와 양은솥이 부엌으로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그렇게 되었다. 양은솥은 밥을 시커멓게 태우기 일쑤였다. 은근한 숯불에 누른 가마솥에 누룽지와는 달리 양은솥에 눌러 붙은 것은 먹을 수 없는 새까맣게 타버린 쌀숯 이었다. 양은솥에 숯을 긁어내고 나면 구멍이 났다. 솥에 구멍이 나면 기다렸다는 듯 구멍을 때워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한 번 뚫린 구멍은 때워도 온전하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산골마을에서는 양은솥이 잠깐 유행처럼 번졌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한 번 꺼져버린 가마솥공장의 불은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 솥은 무겁고 마음은 가벼워야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밥을 여러 번 태워보고서야 알았다. 이게 다 반성도 없이 하와이로 여행을 떠난 짐승 때문이고 그 자리를 차지한 붉은 눈의 사냥꾼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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