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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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냥 4

고난의 행군 그리고 아버지의 매가 할아버지의 어께로 돌아왔다.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지고 공화국은 고난의 행군을 선포했다. 러시아인민들은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100m 넘는 줄을 서야 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공화국의 사정은 더 심각했다. 굶주림이 인격을 잡아먹었다. 인격을 상실한 인민들은 국경을 넘어 유랑을 선택했다. 공화국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인민들은 초근목피로 목숨을 연명했다. 깡마른 시간은 더디게도 흘렀다. 고난의 행군이 3년째 지속되자 인민들의 경제난을 빠르게 회복한 러시아로 일자리를 구해 떠났다. 중앙당의 보살핌이 미치지 못하는 평안북도와 함경북도 인민들의 삶은 지옥도를 보는 듯 했다. 다행히 외부세계와 멀리 떨어져있는 백도연공동체는 스스로 생산한 식량으로 여유로웠지만 외부에서 들려오는 슬픈 소식들로 마냥 즐거울 수는 없었다. 중앙당의 식량보급이 그나마 ..

사람의 기억 2024.01.12

우리는 만나야한다.

무심한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갔다. 정부에서 주선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몇 차례 이루어졌지만 아버지와 아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매들은 국경을 지우며 가을이 깊어지면 돌아오고 봄이 찾아오면 북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새로운 기계시설을 갖춘 방앗간이 늘어나면서 도르메물레방앗간도 과거로 사라졌다. 처남 송훈이는 방앗간을 그만두자 시간이 많이 남는다며 매사냥을 자주 나갔다. 열심히 하는 만큼 재미도 지고 백운에 매사냥 수준이 높다는 소문이 퍼지자 여기저기서 매사냥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우리는 예전부터 하던 놀이이고 좋아서 하는 일이었지만 민중생활사 연구소라는 곳에서 백운의 매사냥을 연구하겠다며 찾아왔다. 연구원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매사냥의 역사까지 알아내 두터운 책을 만들었다. 계절은 돌고 돌..

사람의 기억 2023.12.11

매사냥은 방앗간집 처남에게로 이어지고

다시 겨울이 찾아왔고 매가 돌아왔다. 딸아이들은 다들 시집을 가서 도시로 나갔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도시로 떠나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서 도시로 나가지 않으면 바보취급을 받기도 했다. 산골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늙고 노회한 사람들이거나 늙은 부모를 봉양해야하는 무녀리들이었다. 도시로 나간 이들은 잘 살 거라 생각했지만 산골마을에서 쌀을 가져갔고 무녀리들은 소를 팔아 도시에 사는 동생들에게 돈을 보냈다. 도시는 눈뜨고 코를 베어가는 세상이었고 숨만 쉬어도 돈이 든다고 했다. 산골에 사는 무녀리들은 무녀리의 역할을 잘 해냈다. 일하는 소가 먼저 사라졌는지 경운기가 먼저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논과 밭에서는 시끄럽게 딸딸거리는 경운기가 주인행세를 했다. 한 식구로 살아가던 소..

사람의 기억 2023.12.10

개마고원으로 떠나는 할아버지, 오랜 이별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판단은 빨랐다. 며칠 동안 좋은 음식과 약으로 기력을 찾은 할아버지는 14년 전 그 날처럼 먼 길 떠날 채비를 서두르셨다. 아버지는 집안에 있는 패물들을 모조리 모아서 무명 주머니에 담았다. 배가 불러오기 시작한 며느리에게도 길 떠날 채비를 하게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북한에 새로운 가족이 있다 하셨다. 독립운동을 함께했던 동지와 결혼을 해서 아들이 둘이라 했다. 나에게는 작은 아버지가 생겼고 아버지에게는 동생이 생겼다. 할아버지께서는 갖은 세상풍파를 다 겪었을 터인데도 50대 중반으로 보기에는 너무 젊고 건강해보였다. 상처에 대한 회복력도 빨라서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관통상을 입은 옆구리가 깨끗이 나았다. 보름달이 덕태산 너머에서 올라왔다. 임포수가 징병과 징용으로, 위안부로 사람들을..

사람의 기억 202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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