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아홉 옹기에 담긴 불(무형문화재 이현배 선생님 말씀을 담았습니다.)
지금은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가마솥공장을 지나 작은 언덕을 넘어 가면 아름드리로 자란 소나무 밭이 나오고 소나무 밭을 지나면 오래전부터 솥내라 불리는 옹기마을이 나타난다. 1454년에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에 옹기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으니 꾀나 오래된 마을이다. 한 가지 일을 10년 동안 하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지만 한 마을에서 500년이 넘는 세월을 옹기를 구우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니 놀랄만한 일이다. 솥내는 풍수지리설로 볼 때 다리가 네게 달린 솥의 혈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다리가 넷 달린 커달란 솥 또는 화로는 위엄과 왕권을 상징했다. 왕이 기거하는 궁 앞에는 용 네 마리가 이고 있는 커다란 솥에 꺼지지 않는 불이 양쪽에서 타올랐다. 다리가 넷 달린 솥의 혈에 앉은 마을이라 함은 마을이 위엄을 가진다는 뜻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위엄과 권세를 부여할 자리라는 뜻일 게다. 혈자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솥내마을 옹기점은 있어야 할 곳에 자리를 잘 잡았다. 솥내 뒷산이 마령평야로 내려앉는 지점에는 질그릇을 만들기에 적당한 흙이 풍부했다. 점토가 묻혀 있는 땅은 학이 날아가는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산에 붙어있는 다리부분은 토심이 얇지만 몸통부분으로 내려오면 토심이 깊어지고 찰기가 더해져서 그릇과 옹기를 만들기에 좋았다. 마령들판은 널찍이 펼쳐지다가 섬진강을 만나고 강을 건너고 나면 다시 산을 만난다. 경지정리가 되기 전만 해도 강가 근처 논에는 군데군데 고인돌이 있었다. 불과 40년 전까지 그러했는데 2000년을 그 자리에 서 있던 무덤을 사람들은 손쉽게 무너뜨렸다. 동네 어른들 말씀으로는 고인돌과 그 밑에서 나온 토기들은 논 가운데를 깊이 파고 묻어버렸다 한다. 고인돌을 제외하면 마령평야는 고운 흙으로 가득 차 있는 셈이었다. 가마에 온도를 높이려면 땔감이 필수적인데 솥내마을은 가까운 산으로 빙 둘러싸여 있다. 더군다나 산에는 짧은 시간에 가마온도를 높일 수 있는 소나무가 빼곡하다. 주변에 있는 나무들이 부족해지면 백운동 계곡과 오만동에 사는 은자들에게 부탁을 하면 나무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들녘사람들은 농사일이 많아 나무꾼 노릇을 못하지만 골짜기 사람들은 땔감을 해다 파는 일에 익숙해져있었다. 흙은 빚어지고 나무는 불이 되고 빚어진 흙은 불을 만나 그릇이 되고 옹기가 되었다.
마령 들판 논에는 선사시대부터 써왔던 토기가 묻혀 있고 걸어서 잠깐이면 닿는 거리에 500년 전부터 옹기를 굽던 가마가 있다. 사실 500년 전 기록에 있다는 것은 500년 전에 옹기를 굽기 시작했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부터인지 모를 그 한참 이전부터 구웠을 가능성이 크다. 마령 들판의 선사시대 토기는 성형을 한 그릇은 그늘에 말리고 모닥불을 피워 구웠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바람의 영향을 줄이고 불의 열을 담기 위해 땅을 파고 토기를 굽다가 더 효율적으로 열을 담기위해 아궁이를 만들었다. 아궁이에서 구워진 토기는 불이 강할수록 단단해진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아냈고 큰 아궁이 가마를 만들어 그릇을 구우면 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류가 토기의 사용한 역사는 12,000여 년에 이르지만 도기가 만들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1,200에서 1,500여 년 전의 일이다. 인간은 토기를 만든 후로 약 10,000여 년이라는 기나긴 기간 동안 물을 담으면 오래 가지 못하는 토기를 써왔다. 기록과 고증에 의한 도기의 역사는 1500년을 넘지 못하지만 아궁이의 역사가 2,400임을 감안하면 도기의 역사는 더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새로운 것의 발견은 어느 날 우연히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법이다. 누군가 아궁이에 점토로 구슬을 만들어 던져 넣었는데 물에 젖지 않는 구슬이 되었다거나 하는 우연이 도기를 만드는 시작이 되었을 수도 있다. 보다 단단한 도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가마를 만들게 했고 800도의 토기부터 시작하여1,000도의 도기로 1,300도의 자기를 굽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가마의 개량하고 다양한 나무를 태워가며 오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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