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가는 길

사람의 기억

개마고원에 터를 잡다. 휴전선을 넘어서

솔바위 2024. 1. 1. 18:19
728x90
반응형

          개마고원에 터를 잡다. 1부

 

만삭인 아내와 할아버지를 모시고 큰 길을 따라 파주까지 오는 동안에는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군사분계선을 넘는 일은 위험을 감수해야한다. 할아버지께서는 걱정과 두려움에 긴장하고 있는 손주며느리를 달래시며 검문을 피해 동쪽 산악지대로 당나귀를 몰았다. 오솔길을 따라 깊은 산중으로 들어설 무렵 남쪽에서 활동하다 북으로 퇴각하는 파르티잔 부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어쩌면 이들을 만나기 위해 이 길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지난 세월들을 돌이켜보면 우연히 일어난 일들이 결국은 아버지의 계획으로 생긴 일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할아버지의 계획도 그러하겠지 싶어 안심이 되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아내와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말씀 하셨지만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할아버지를 파르티잔부대에 의탁하게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것 같아 할아버지의 건강이 온전해질 때까지 함께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휴전협정이 맺어진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 군사분계선은 명확하지 않아 큰 길목만 피하면 북으로 넘어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북으로 이동하면서 할아버지와 파르티잔 지도부는 밤마다 회의를 가졌다. 할아버지는 아마도 아들을 만나기 위해 북에서 남하한 파르티잔 간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지금 함께 퇴각하는 파르티잔들은 북에서 내려온 동지들과 남한에서 자생적으로 함께 하게 된 가족이 없는 동지들이라 하셨다. 자생적 파르티잔 중에 가족이 있는 동지들은 지리산과 회문산에 남아있다고 하셨다. 남쪽에 남은 파르티잔들은 자신들이 떠나면 가족들이 위험해 질 것이 걱정되어 산에서 내려가지도 못하고 북으로 넘어가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여있다며 걱정을 하셨다.

  할아버지께서 개마고원 농장에 필요한 살림살이와 곧 태어날 증손에게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는 몇 주일동안 당은 전쟁 패배에 대한 책임공방으로 시끄러웠고 정파들끼리의 싸움으로 몇몇 간부들은 숙청을 당했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독립운동가 대우로 고위직 간부로 살아갈 기회를 버리시지 않았나싶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