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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

알혼섬 어머니의 신탁 천리를 보는 눈을 가진 인연을 만나라

솔바위 2024. 1. 3.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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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와 작은 아버지를 만나다.

  손자와 며느리를 남으로 돌려보내려 했던 할아버지의 노력은 실패했다. 당에서는 파르티잔들이 안전하게 북으로 넘어올 수 있도록 미군정과 포로교환 협상 차원에서 북으로 오는 군인과 일반인들을 일정 기간 동안만 묵인하기로 했다. 그 기간이 지나면 군사분계선을 철저하게 통제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는 일은 운명으로 받아들여야한다.

  개마고원은 은둔자가 숨어 살기에 어울리는 오지 중에 오지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소련제 포르공 사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두어 시간 오르니 고원에 숨어있는 평야지대가 펼쳐졌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평야에는 이산 저산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모여 만든 제법 큰 호수가 있고 그 둘레로 작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고원 아래 도시와는 너무나 다른 천국보다 낯선 느낌이다.

 

  마을로 들어서

니 온 마을 사람들이 나와 할아버지를 반겼다. 할아버지는 조국의 독립을 이루고 할머니의 뜻에 따라 개마고원에 자리를 잡고 "사람이 먼저다."라는 기치아래 협동농장의 틀을 만드셨다. 반가운 마을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틈으로 쌍둥이 남자애 둘이 기어 나오더니 할아버지 품에 안겼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 작은 아버지들이다. 아이들을 부르며 나타나신 할머니는 투명하게 빛나는 여인이다. 할머니라 부르기에는 뭔가 많이 어색하다. 꼬맹이들에게 작은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야 고향에서 많이 경험하였지만 앳돼 보이는 여인에게 할머니라니...... 할머니는 우리 부부를 다정하게 맞아주셨다.

  할머니의 국적은 러시아이고 한민족의 피가 흐르는 브리야트족이라 했다. 바이칼호수에 있는 알혼섬 무녀집안의 장녀인데 신탁을 받은 어머니의 명으로 두만강에서 나룻배로 사람들을 나르는 일을 하며 항일무장조직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일을 하다가 할아버지를 만났다고 한다. 사실 정보전달자의 임무는 그냥 일에 지나지 않았고 알혼섬 어머니의 신탁은 진실한 눈으로 천리를 보는 인연을 만나 고향으로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알혼섬 어머니께서는 동쪽으로 땅이 끝나는 강가에서 기다리면 인연을 만나리라 하셨고 두만강에서 삼년을 기다린 끝에 매의 눈을 가진 할아버지를 만나셨다. 그때 할아버지는 러시아군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하고, 블라디보스톡에서 동지들 간의 배신으로 곤혹을 치르고 신실한 동지들을 모아 저물어가는 일본제국주의자들과 마지막 결사항전을 치르기 위해 국경을 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눈은 언제나처럼 천리를 보는 매의 눈을 아있었다. 할머니는 알혼섬 어머니 신탁의 주인공이 할아버지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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