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너와 지붕은 점판암이 많은 특정지역에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지켜야겠다. 미재천을 따라 나있는 길을 내려오면 길가에 1801년에 세운 효자각이 나온다. 효자각이 세워진 장소가 왜장이 방을 붙였던 곳이었다. 효자각 주변에는 미계 신의련의 효행을 기리는 이야기들이 새겨진 비석군이 자리를 잡고 있다.
효행을 기리는 비석들이 하나 둘 세워지고 효자각까지 세워졌다면 임금이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상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효자각이 세워지고 68년 후인 1869년에 개국공신이나 충신들에게 내려지던 웅장한 건물이 효자 신의연을 기린다는 명목으로 내려온다. 그 건물이 노촌리 미재천 냇가에 웅장하게 서 있는 영모정이다. 영모정은 전면 4칸에 측면 4칸의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누각이고 지붕은 점판암 돌너와를 얹었다.
칸과 칸 사이의 거리가 짧지만 작은 규모의 정자로는 굵은 기둥이 유난히 많이 들어갔다. 주춧돌은 거북이 모양을 깎아서 만들었고 1층 기둥이 12개 2층 기둥도 12개다. 주추로 쓰인 거북이는 미재천 물을 마시러 가는 듯 깎아놓았는데 이는 거북이가 지고 있는 영모정이 풍요로운 복을 불러오고 오래도록 보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새겨 넣었다. 영모정에 올라서면 여러 개의 현판과 주련이 보인다.
대들보를 쓰지 않고 정자 내부에도 열 두 개의 기둥을 모두 세워 공간이 좁아 보인다. 영모정 마루에서 천정을 올려다보면 천정 중앙에 용문양이 그려져 있고 서까래와 기둥까지 모두 단청으로 칠해져 있다. 영모란 "오래도록 사모한다."라는 뜻인데 보통의 정자와는 다르게 영모정은 쉬고 놀기 위한 정자가 아니다.
영모정에서 미재천을 내려다보면 수량이 풍부하고 깊이도 적당하고 큰 바위들이 주변을 감싸고 있어 신선놀음하기에 적당하다. 어찌 보면 미재천에서 제일 놀기 좋은 장소에 영모정이 서있다. 효자각과 영모정은 거창신씨 집안의 효행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세워졌지만 후대 사람들은 휴식과 놀이공간으로 쓰고 있다. 근래에 들어서는 계곡을 따라 자라난 숲이 아름답고, 작지만 웅장한 정자와 시원한 계곡을 즐기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 문화재를 관리하는 손길이 바쁘다. 신의련의 효행이 전쟁의 영웅담에 실려 명나라에까지 전해졌다고는 하지만 효자각과 비석들이 세워진 시기는 200년이나 지난 후의 일이다. 전쟁의 참화를 복구하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겠지만 비슷한 시기에 열녀문과 효자각들이 전국에 유행처럼 세워진 연유는 연구해볼 가치가 있겠다. 아마도 지배층의 권력을 탄탄히 하기위한 방편으로 효행을 이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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