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가는 길

사람의 기억

노촌리 방죽

솔바위 2023. 11. 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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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촌호수는 생겨야 할 곳에 생겼다. 노촌호수 안에는 작은 방죽이 있었고 작은 농지들이 골짜기를 따라 자리했고 집은 없었다. 산과 산이 가까워 물을 가두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노촌리에서 하미마을까지는 상당히 길게 달구지 길로 이어져 있었다. 골짝사람들과 들사람들의 경계를 두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그 경계가 지금은 커다란 호수로 되었다. 노촌호수 안에 있던 작은 방죽은 노촌리 들판의 주인이셨던 신씨 집안 어르신이 만드셨다. 노촌리는 거창신씨 집안 집성촌으로 이루어졌는데 들판도 대부분 신씨 집안 소유로 관리는 종손이 도맡아했다. 거창신씨 집안이 노촌리에 자리를 잡은 것은 450여 년 전으로 문헌과 비석에 나와 있고 노촌리와 평장리 인근에 고인돌이 여러 기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무리를 이루어 살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2000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1906년에 태어나신 신씨 집안 신기동 어르신은 노촌호수 안에 방죽을 만들어 마을사람들의 농사를 도왔다. 방죽에는 미꾸라지를 비롯한 다양한 물고기들을 길러 마을사람들이 자유롭게 잡아먹도록 하셨다. 신기동 어르신의 아버지는 집안 형제인 신종화 어른과 함께 원노촌과 신기마을 사이에 성송제라는 제법 큰 방죽을 만드셨다.

신씨 집안사람들은 마을의 화합과 평화를 위해 방죽 만들기를 좋아했다. 방죽이 없던 시절 봄 가뭄이 심해지면 마을사람들은 논에 댈 물싸움을 하느라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마을을 이끌던 촌장격의 어르신들은 마을사람들을 화합하게 하는 방법으로 여러 개의 방죽을 만들었다. 땅을 파서 보를 막고 물길을 돌려 방죽에 물을 채우려면 여러 사람의 노력이 필요했다. 함께 땀을 흘리며 일 한 사람들에게는 쌀이 일당으로 주어졌고 막걸리는 덤으로 따라갔다.

방죽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어르신들께서 책임을 지셨다. 방죽이 만들어지면 농사짓기가 편해질 터이고 어차피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사람은 신씨 집안사람들 일 테고 마을사람들끼리 화합하고 분위기가 좋으면 큰일을 벌이기도 수월했다. 마을사람들은 촌장어르신이 덕을 베푼다고 생각해서 고마워했지만 정작 촌장님은 자기 일을 마을사람들이 도와준다고 생각해서 고마운 마음을 마을로 돌렸다. 지금이야 노촌호수 하나가 노촌리에서 시작해 평장리로, 운교리로 이어지는 들판의 곡식들을 다 키워내지만 불과 150년 전만해도 작은 방죽들이 작은 생명들을 물속에 품어 키우고 작은 논들을 오가며 곡식을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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