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평야의 끝자락,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하는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물줄기는 땅으로 스며들었다가 먼발치서 바위를 타고 방울방울 낙하를 시작한다. 고원평원에는 고운 흙이 자리를 잡고 있지만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부터는 이상하리만큼 바위가 즐비하다. 바위에서 물이 나왔다거나 바위가 물을 만들어 낸다거나 하는 옛 이야기를 들어 알고는 있지만 실재로 물이 떨어지는 바위를 보면 바위가 물을 내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힘이 바위주변의 흙들을 고원평야로 옮겨 놓았다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고원평야와 바위산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신광재에서 시작된 물줄기를 사람들은 미비천이라 부른다. 미비는 상미마을과 비사랑마을과 하미마을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급하게 낙하하던 미비천물이 느려지기 시작하는 곳에 상미마을이 있다. 상미마을에는 백토가 많이 나와서 오래전부터 사기그릇을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상미마을에서 만든 사기그릇은 신광재를 넘어 장수와 함양, 무주로 팔려나갔다. 좋은 흙이 풍부하고 물이 좋고 산이 깊어 세상과 단절하고 살아도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던 마을이었지만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토벌대는 마을 사람들을 쫓아냈다. 아주 오래전 깊은 골짜기로 들어와 귀틀집을 짓고 소박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빈손으로 쫓겨났다. 숨어사는 즐거움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사람들은 쫓겨나고 빈집이 되어버린 귀틀집은 쓰러질 듯 말 듯 위태롭게 서 있다.
전쟁이 끝나고 돈벌이를 찾아 골짜기를 찾은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 팔고 나무 밑에서 발견된 백토는 중장비를 이용해 대량으로 파내어 팔아먹었다. 골짜기를 돈벌이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능력이 출중해서 임진왜란 즈음부터 숨어들어 사기그릇을 만들어도 바닥을 보이지 않던 백토를 순식간에 없애버렸다. 400년 세월을 몇 개월로 압축해버리는 능력을 숨어사는 즐거움을 선택한 사람들은 가지지 못했다.
조용히 재잘거리며 흐르는 미비천을 따라 내려오다가 옆 골짜기로 살짝 올라서면 비사랑마을이 나온다. 비사랑은 하늘을 나는 사자가 사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비사랑에는 고려시대이전부터 큰 절이 있었고 살아서 부처가 된 현자들이 살고 있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기억하는 어르신들은 비사랑을 비시랭이라 부른다.
비시랭이에는 큰 바위 곳곳에 500년 전 이야기들이 적혀 있어 사라져버린 존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비시랭이 오래된 집에는 디딜방아 두 개가 남아 있다. 비시랭이 골짜기가 미비천으로 만나고 큰물이 무겁게 떨어지는 용소폭포 근처에는 커다란 물레방아가 있었다.
흰구름마을 큰 골짜기마다 살고 있던 용들은 두려움의 존재가 아닌 생활을 지속하게 하고 복을 내려주는 친절한 용들이었다. 아직 살아계신 어르신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물레방아는 아주 커다랗고 힘이 좋아서 신광재와 다랑이 논에서 자란 곡식들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비시랭이 사람들도 한국전쟁 때 들녘으로 쫓겨나 힘겨운 나날들을 보냈다. 은거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왔고 지금도 세 가구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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