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여덟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아들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함께 오래된 종가에서 살아온 기억을 품고 노촌리가 시작되었다는 원노촌 고향집으로 간다. 멀리서 바라본 고향마을은 물길도 산도 그대로이지만 길은 넓어지고 집들은 낯설다. 고향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영모정과 효자각은 어린 시절 그 모습 그대로인데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어디로 가야할지 가늠이 안 된다.
눈에 익숙한 대숲이 있는 산그늘로 발길을 옮긴다. 대숲이 가까워지자 아버지께서 일 년에 열두 번 씩 큰일을 치르시던 제각이 반긴다. 대숲의 왼쪽 끝에는 마을사람들이 식수로 쓰는 우물이 있다. 일반적으로 우물이라 하면 땅을 깊이 파서 만들지만 우리 동네 우물은 물이 대나무 뿌리에서 솟아난다. 돌을 쌓아 네모 모양으로 만든 우물에서는 사시사철 비슷한 온도의 물이 흘러넘친다. 이 물도 도랑을 타고 흘러 벼포기를 적시고 마치천으로 흘러들어 섬진강과 만난다. 제각 돌담을 타고 대숲에 이는 바람 소리에 귀를 씻으며 잠시 걸으니 동네 형들, 친구들, 동생들이 함께 모여 공부를 하던 서당이 보인다.
보고 싶은 얼굴들이 꼴 한 망태기를 지고 문이 없는 서당 마당으로 들어선다. 아버지께서는 늘 배움을 강조하셨다. 나라를 빼앗겨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심어 놓으신 아름드리 소나무를 일본 놈들이 모조리 베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도 우리가 배우지 못한 탓이고 오만동에 숨어 살던 힘 좀 쓴다는 젊은이들이 징용으로 끌려가는 것도 배우지 못한 탓이고 내동산과 팔공산 금광에서 힘들게 일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동네 아저씨들인데 정작 그 금들이 모두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가는 것도 우리가 배우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동네 아이들을 서당에 모아 놓고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아이들에게 하루에 딱 한 망태기 풀을 베어오게 했다. 힘이 좋은 형들은 좀 많이 꼬맹이들은 애기 베게만큼이라도 가져오게 하셨다. 일본 놈들이 베어간 소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형들과 함께 느티나무를 심으셨다. 서당 옆에 있는 살림집에는 선생님을 들여 극진히 모셨다. 아이들에게 시키는 조그만 일들은 배움에 대한 대가라고 하셨다. 아이들은 힘들이지 않고 일을 해냈고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저녁밥을 먹여 집으로 돌려보냈다.
공부를 하고 싶어 서당에 오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배가 고파 어린 동생을 데리고 서당에 오는 꼬맹이도 있었다. 공부에 어울리기 힘든 꼬맹이들은 비둘기와 닭에게 모이를 주는 일을 맡겼다. 아이들이 베어온 풀로는 소를 키웠고 꼬맹이들이 잡아온 지렁이나 메뚜기, 곤충들은 닭을 살찌우는데 썼다. 아이들은 선생님으로부터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꼬맹이들은 주린 배를 채우고 집에 있는 가축들은 살을 찌웠다. 아이들은 돈 대신 풀단으로 학비를 대신하는 일이 부끄럽지 않았고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늘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가져온 풀 한 망태기가 고맙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고맙고, 밥을 깨끗이 먹어주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아버지께서는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형들은 도시에 있는 기숙학교에 보내주셨다. 아버지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보다는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더 신경을 써주셨다. 동네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를 스스럼없이 대했고 동네 어른들은 아버지께 공손했다. 아이들도 아버지도 동네 어른들도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아버지께서 선생님과 바둑을 두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얼굴에 심각한 표정을 지을 때 빼고는 항상 인자하고 웃는 얼굴의 아버지셨다. 그때 아버지 연세가 서른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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