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가는 길

사람의 기억

영모정과 미룡정 한 세대의 기억

솔바위 2023. 11. 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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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정에서 오솔길로 물을 따라 잠깐 걸으면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건널 수 있는 아담한 미룡교가 나온다. 미룡교 밑을 내려다보면 미계 신의련 선생이 놀던 깊은 소가 있다. 깊이는 대략 3미터가량 되는데 시퍼런 물과 거대한 바위들이 어우러져 용이 살만한 공간이 깊고 넓게 펼쳐진다. 신의련 선생은 여기에서 잉어를 잡아 부모님을 봉양했다.

'미계신의련유적비'에 쓰여 있는 첫 문장이 '잉어와 꿩이 기적을 나타내고'인데 잉어는 미룡정 앞 깊은 물에서 꿩은 덕태산이 품은 야산과 들판에서 잡았다. 잉어를 방죽에서 잡았다면 모를까 미재천은 물이 차가워 잉어가 살기에는 부적합하지만 비석에 각인 된 글이 그러하니 그냥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두 명이 겨우 비켜 갈 수 있는 미룡교를 지나면 미룡정이 나온다. 계곡과 이어진 바위에서 몇 발짝 떨어져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영모정이 경사가 좀 있는 바위위에 이층 누각 구조로 경건함과 위엄을 드러냈다면 미룡정은 편안한 땅위에 소박한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평범한 기둥을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작은 규모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운데 기둥을 빼고 대들보를 써서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물놀이하기 좋은 계곡으로 내려가기 쉽게 길도 만들어 놓아 여름철에는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공간이 되었다. 봄과 가을에는 동네 사람들이 쉬고 노는 공간으로 잘 활용되고 있다. 미룡정은 1990년에 거창신씨 종중에서 지었는데 제각의 역할을 해야 하는 영모정은 경건하게 바라보고 놀기는 미룡정에서 하자는 뜻을 담고 있어서 종중의 소유이지만 누구나 와서 쓸 수 있도록 개방해놓고 있다. 사람도 누구나 자기의 역할이 있겠지만 정자도 정자 나름의 역할을 다 하면서 사람과 어울려가며 보존되기를 바라는 종중사람들의 바람이 미재천과 영모정과 미룡정에 아름답게 깃들었다.

한 세대가 기억할 수 있는 세월은 얼마나 될까? 혼자만의 기억이라면 70년을 넘지 못하겠지만 아버지의 기억과 할아버지의 기억을 간접적으로 이어받거나 동네 어르신들과 일가친척들의 집단기억을 물려받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물론 인간이라는 존재가 개인적인 기억마저도 오류를 가질 가능성이 있고 유산으로 물려받은 이야기는 오류의 가능성이 더 크지만 집단기억과 유형의 문화유산의 고증이 더해지면 대략 150년 동안의 기억을 한 세대가 품을 수 있다. 만약에 한 마을 사람들이 고스란히 대들이어서 그 자리에 사는 마을이 있다면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기억의 시간과 공간은 늘어날 테고 그 기간은 500년을 훌쩍 넘길 것이다. 거창신씨 집성촌 노촌리는 기억의 시공간을 늘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종가를 지키던 종손의 며느리가 살아계시고 인근 동네에서는 오랜 세월 종손으로 대를 이어온 막내 따님을 만날 수 있다. 종중 모임이 잘 꾸려져 있어 조상들의 집단기억을 들을 수 있고 비어 있는 세월의 기억이나 흐릿한 기억들은 비석에 새겨진 비문들과 사당에 보관되어 있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시절의 생생한 기록은 오래된 유형문화유산의 상량문과 편액과 주련에서도 읽을 수 있다.

노촌리라는 지명의 유래가 기러기가 갈대밭에 내려 앉는 형국이라 했다. 그만큼 풍요롭고 안전한 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임진왜란 시기 오만 명의 목숨이 오만동으로 숨어들어 목숨을 부지했다. 무기를 들고 의병을 일으켜 수많은 목숨을 구하고 자신은 아들과 함께 목숨을 버려야 했던 김천일 장군과 일본의 침략을 알려 나라를 구하려 했던 무민공 황진과 살신의 효행으로 침략자를 감동시켜 많은 사람들을 구한 신의련이 노촌리의 한 사당 충효사에 함께 모셔져 있는 데는 무슨 사연이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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