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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

300년 전의 기억

솔바위 2023. 11. 1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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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자리에 터를 잡기 시작한 분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라 한다. 그 이전에는 마을 초입에서 일가친척들과 어울려 살다가 종가의 체면을 생각한 문중 어른들의 뜻을 받아들여 1700년대 말에부터 소나무가 울창하던 이 자리에 소박한 살림집을 짓기 시작했다. 처음에 지은 단 칸 오두막으로 할아버지의 아버지를 모시기 위한 집이었다. 지금은 겨울에 매와 함께 지내는 매방으로 쓰고 있다.

아버지를 편안하게 모신 할아버지는 지금 안채로 쓰고 있는 집을 지으셨다. 나무는 이 자리에 자라고 있던 소나무를 그대로 썼고 시골 살림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소박한 집을 지으셨다. 아버지를 극진히 모시던 할아버지께서는 부엌을 방과 방 사이에 두어 며느리와 식솔들이 자주 출입할 수 있게 집 구조를 짜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처음에 지었던 오두막에 기거하면서 노환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 모시기에 정성을 다했다.

할아버지께서 오두막에 기거하는 이유는 매를 기르기 위해서였다. 아버지께서는 꿩고기를 유독 좋아하셨는데 매로 꿩을 사냥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분이 아버지이시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 집안의 아버지들은 모두가 매사냥으로 어른들을 봉양해왔다. 매사냥은 우리 아버지 세대와는 다르게 증조할아버지 때 까지만 해도 아버지와 아들이 할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지금과 같은 놀이가 아니었다.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던 시절에 사냥은 놀이가 아닌 생존을 위함이었다.

한 세대가 지날수록 집안은 번창해갔다. 농사는 해마다 풍년이었고 나라에서는 집안의 효행이 지극하다 하여 상을 내려주었다. 순조 1년(1801년)에는 미계 신의련 할아버지의 효행을 기리는 '효자각'이 내려졌고 고종 6년(1869년)에는 '영모정'을 하사 받았다. 나라에서 상을 받을 때마다 문중 어르신들은 회의를 통해 산에 붙어 있거나 물이 나는 논 한 배미를 공동으로 사들였다. 사들인 논에는 벼를 심는 대신 방죽을 파서 다음 해의 풍년 농사를 도모했다.

방죽이 생기고 방죽에서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은 다른 논들에 비해 소출이 월등히 많았다. 논을 사들이는 것은 문중에서 했지만 방죽을 파는 일은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했다. 첫 삽을 뜨기 전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이 힘과 지혜를 모아 하는 일이어서 시작을 할 수 있었고 다행히 산이 끝나는 곳에 붙어 있는 논들은 기러기의 배처럼 살찐 진흙이 두터웠다.

파낸 진흙으로 둑을 쌓으니 물이 새지 않는 튼튼한 방죽이 되었다. 방죽이 완성되면 물을 채우기 전에 방죽 주변에 감나무를 심었다. 방죽에 물을 채우고 나면 낚시를 좋아 하는 어르신들은 붕어와 잉어를 잡아다 넣었고 논일을 맡아 하던 젊은이들은 논도랑에서 우렁이와 미꾸라지를 잡아다가 방죽에 넣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어서 방죽에서 내린 물은 이웃 논을 적시고 우리 논으로 와서는 다시 흘러 아랫마을 논까지 내려갔다.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은 산자락에 붙어 있었고 논들은 들판을 향해 조금씩 높이 차이를 두고 뻗어있었다.

방죽 덕분에 농사가 수월해진 사람들은 효행이 농사일에까지 복을 내린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집안 어른들은 한결같이 '우리 집안은 효행으로 일어선 집안이니 부모와 조상모시기에 정성을 다 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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