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가는 길

사람의 기억

할아버지와 매사냥

솔바위 2023. 11. 1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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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매사냥에 더 열중하셨다. 집안의 전통으로는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던 매사냥을 어린 아들을 데리고 매일 산으로 들로 나가셨다. 사람들은 어린 아들이었던 아버지에게 매사냥 기술을 전수하기 위함이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매사냥 실력은 할아버지께서 공을 들인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세 해가 지날 무렵이 되자 아버지는 매를 받기 위해 하늘에 갖추어야할 예의를 알게 되었고 매를 받는 방법과 매그물을 짜는 방법을 배웠다.

  손재주를 타고 난 아버지는 매의 주인을 알리는 시치미를 만드는 법과 매의 위치를 알려주는 매방울을 만드는 법, 매를 길들일 때 매를 보호하기 위한 도구인 젓갓끈을 엮는 방법들을 단숨에 배워나갔다. 매를 길들이는 일은 할아버지와 함께한 삼 년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매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매와 교감하는 방법을 전수하는 데는 많은 공을 들였다. 매와 교감하면서 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은 쉽게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매를 품고 사냥을 나가는 날이면 할아버지는 매가 되었다. 매를 하늘에 날리는 순간 할아버지는 매의 눈으로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높고 먼 하늘에서 땅에 사는 사람들의 내밀한 것들까지를 매의 눈으로 정확하게 내려다보았다. 할아버지께서 매사냥을 나가는 일은 단순히 매가 하늘에서 사냥감을 낚아채는 쾌감을 맛보려함이 아니었다. 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자 함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인간의 선함과 악함, 정의로움과 비열함, 기쁨과 고통, 사랑과 증오, 무욕과 욕망 그것들 사이의 틈을, 그것들 사이의 빈 공간을 보려 하셨다.

  할아버지는 한 해 겨울을 온통 매방에서 아버지와 함께 사셨다. 세상일에는 정을 떼시려는 듯 집안 어른들과의 만남마저 꺼려하셨다. 동네 사람들과는 아예 관계를 끊으셨다. 다만 간간히 찾아오는 낯선 일꾼들과 거렁뱅이에게는 친절을 베풀고 밥상을 함께했다. 어느 날 매방에서 매와 함께 주무시던 아버지는 꿈을 꾸셨다. 매가 물끄러미 아버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꿈을 꾸셨다한다. 아버지는 다음날 매와 함께하는 밥상머리에서 어젯밤에 꾼 꿈 이야기를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아침상을 물리시고는 곧바로 사냥 갈 채비를 하라 이르시고 조상님들의 위패를 모신 제각으로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으셨다. 점심 무렵이 되어 마당으로 나오신 할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께서 매사냥을 나가실 때 입으셨던 다 헤어진 누비옷을 입고 계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아버지에게 매를 품게 하시고는 빠른 걸음으로 문이 없는 문을 나서셨다. 매일 오르던 뒷산이 아닌 면소제지로 가는 지름길로 들어선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빠른 걸음으로 밤새 내린 눈밭에 발자국도 남기지 않으시며 걷고 걸어 면사무소 앞을 지나 일본순사들이 보초를 서는 지서를 지나 금광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터를 돌아 도르메방앗간을 거치고 섬진강을 건너 내동산 언덕으로 오르셨다. 아버지 뒤로는 할아버지의 행동을 기이하게 여긴 순사 둘과 팔공산과 내동산에서 캐내는 금을 수탈하려 들어온 붉은 눈의 일본 놈 서넛과 방앗간 집 아저씨 두 분이 따랐다. 내동산 언덕에서 할아버지께서는 덕태산 능선이 내려앉은 신광재를 가리키며 매를 날리라 하신다. 할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기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지만 걸음걸이 하나 말 한 마디 허투루 하는 법이 없던 할아버지의 명을 어길 수는 없었다. 매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아버지는 보았다. 인간사이의 균형이 깨져버린 세상에서 자신의 희생을 통해 제자리를 찾으려는 사람들과 폭력의 노예가 되어 괴물이 되어가는 사람들, 돈에 대한 탐욕에 눈이 멀어 자신의 영혼마저 갉아 먹는 사람들을! 매는 점점 높이 날아올라 바람을 탔다. 날개를 곧게 펴고 바람을 타고 오르는 매는 덕태산보다 높아지더니 파란 하늘 위에 작은 점이 되어버렸다. 저리 높이 올라가서도 매의 눈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을 향해있다. 신념을 기키기 위해 깊은 골짜기에 들어와 가녀린 삶을 살아가는 두원리 골짜기 사람들과, 새로운 세계를 꿈꾸다 좌절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스스로 유배지의 삶을 택한 미재천 골짜기 사람들을 두루 둘러보다가 매의 시선은 덕태산을 넘어 장수로, 장수에서 무주로, 무주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평양으로, 평양에서 만주벌판으로 넘어간다. 매의 눈은 천리를 본다 했지만 바람을 타고 높이 오를수록 더 멀리 먼 미래의 시간까지를 본다. 저 너른 벌판이 내가 태어난 곳인가? 매가 살던 곳인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상,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멍해 있는 사이 매가 내리 꽂힌다. 사냥감을 발견한 것이다. 어릴 적부터 매일 오르던 뒷동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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