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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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 55

독립운동자금과 마을을 위해 내놓은 송아지와 당나귀

외할아버지께서는 7일이 지난 다음 장에 다슬기 한 말을 팔러 나가셨다. 모가지에 끈이 묶인 항아리 두 개에 반말씩 나누어 담았다. 나귀는 다슬기 한 말을 가볍게 등에 메고 콧노래를 부르며 꽃향기 그윽한 오솔길을 걸어간다. 외할아버지는 장터에 도착하자마자 어두운 다갈색 다슬기 한 말을 낯빛이 다슬기보다 더 어두운 다갈색인 일본 순사에게 비싼 값에 팔았다. 도르메방앗간 일꾼들 열 두 명이 일주일간 주운 누런 다슬기는 얼마 만큼인지 아무도 모른다. 방앗간 일꾼들은 외할아버지를 생명의 은인으로 믿고 따랐고 흰구름 마을에서 금은 일본 놈들과 괴물들 말고는 거래가 불가능했다. 금은 일본인이 독점해야하는 물건이었고 조선인이 가지고 있는 것은 범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는 금을 팔아서 돈을 벌 생각이 애당초 ..

사람의 기억 2023.12.01

외할아버지의 백일선물 사금을 채취하게 된 사연

젊은 할아버지는 백일 된 할아버지를 안고 외할아버지를 반기신다. 마당과 사랑방과 대청마루에서는 평범하지만 맛있는 음식들로 상이 차려졌다. 백일잔치를 핑계로 일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려는 할아버지의 뜻이다. 할아버지의 뜻을 잘 아는 동네 사람들은 고맙고 맛있게 음식을 먹으면서 나의 백일을 축복해주었고 겉치레를 싫어하는 할아버지의 성정을 잘 아는 집안 어른들과 외할아버지 식구들도 만족해하며 잔칫상을 즐겼다. 외할아버지는 젊은 할아버지께 특별한 선물을 가지고 오셨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촘촘하게 짠 무명천으로 만든 묵직한 자루를 하나 건네신다. 묵직한 자루의 사연은 이러했다. 내동산 금광에 금맥이 터져서 일본 놈들이 난리가 났다. 순도가 높고 굵직한 금맥이었다. 순도가 너무 높아서 가공을 할 필요도 없었다. 금..

사람의 기억 2023.11.29

외할아버지와 당나귀

매를 돌려 보내야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겨우내 나는 꿩젖을 먹고 자랐다. 워낙 가냘픈 어머니였지만 끼니때마다 올라오는 꿩탕과 꿩만두는 어머니를 살찌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어머니를 살찌우고 남는 꿩고기는 젖으로 흘러 나왔다. 나에게 꿩젖을 먹게 해준 매들은 아버지와 내 이름표를 붙이고는 고향으로 날아갔다.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고 힘든 농사일은 시작되었다. 추수가 끝난 지난 가을 파 놓은 방죽에도 물을 가득 채워두었다. 물을 끌어올 수 있는 골짜기에는 모두 방죽을 만들었고 물이 나는 수렁논에도 방죽을 만들었다. 이제 물 걱정은 한 시름 놓았다. 할아버지께서는 농사일을 직접 해보시면서 농부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일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증조할아버지께서 지어 놓으신 외양간에 소를 가득 늘렸다..

사람의 기억 2023.11.28

다시 매가 돌아왔다.

가을이 깊어지고 매가 돌아왔다. 가을걷이도 끝나고 봄에 태어난 소, 돼지, 염소, 닭, 비둘기들은 정성스런 돌봄 덕분에 수가 많이 늘었다. 지난 봄 가뭄으로 고생을 좀 하기는 했지만 오래전부터 만들어 놓은 방죽 덕분에 어렵지 않게 가뭄을 이겨낼 수 있었다. 땅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사람들이 괭이 한 자루로 개간해놓은 다랑이 논이 늘어 물이 부족한 논들이 생겼다. 할아버지께서는 일꾼들과 추수가 끝난 논들을 둘러보며 방죽을 하나 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는 봄부터 가을까지 일을 하면서 일꾼들과 똑 같은 품삯을 당신에게도 적용해 돈을 모아 두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아버지를 불러 돈을 내밀면서 방죽을 하나 더 만들라 하셨다. 그리고 농사를 짓기 위해 개간한 땅은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소유권을 넘겨주..

사람의 기억 2023.11.27

할아버지는 태어나면서 부터 할아버지셨다.

한겨울 매사냥으로 즐거운 잔치를 이어가던 마을에 아버지 혼인날이 다가왔다. 할아버지께서는 전전날부터 잔칫상을 준비하고 손님을 받으라셨다. 손님은 귀천을 가리지 말고 받으라 하셨고 낯선 이들은 할아버지께서 직접 대접하겠다 하셨다. 혼례식은 7일 간 계속 되었다. 각자 일가친척들을 손님으로 받다가도 10리를 걸어 함께 모여 놀다가 다시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10리를 오가며 벌이는 잔치라니! 옛날에도 후대에도 이런 잔치는 드물었고 드물 일이었다. 사람들은 양쪽 집안 잔치를 번갈아가며 돌다가 어느 순간에는 어느 집이 신랑네고 어느 집이 신부 쪽인지를 잊을 정도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함에 놀랐다. 양쪽 집안 잔칫상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일꾼들마저도 손님이면서 주인이었고 면장이 오건 지서장이 오건 누구에게나..

사람의 기억 2023.11.24

괴물들의 폭정과 그에 맞서는 할아버지의 호연지기

할아버지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매사냥을 하면서 동네 사람들의 속사정을 상세히 설명해주셨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마을을 이룬다. 사람은 하나의 우주와 같다. 우주가 균형을 이루며 조화롭게 돌아가는 것은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무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그러해서 한쪽이 너무 사납고 다른 쪽이 너무 온순하면 사람과 사람사이의 균형은 깨지고 어느 한 쪽으로 흡수되어버린다. 사람은 누구나가 소중한 존재이기에 적당한 경계를 두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한다. 마을이 모이면 면 단위가 되고 면들이 모이면 군 단위가 되고 군들이 모이면 도가 되고 도가 모이면 나라가 된다. 나라와 나라의 균형이 깨져버린 지금은 인간성마저 무너져버렸다. 힘을 가진 자는 더 큰 힘을 차지하기 위해 약한 자들을 집어삼켜가며 점점 더 무서운..

사람의 기억 2023.11.21

임포수는 괴물을 사냥하고 만주로 떠나다.

임포수는 괴물멧돼지가 다음 사냥감으로 정한 돼지우리가 있는 초가집 지붕 위로 올라갔다. 괴물멧돼지는 어김없이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왔다. 임포수는 숲에서 괴물멧돼지가 머리를 내미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초가지붕을 떠난 총알은 달빛 꼬리를 달고 날아가 괴물멧돼지의 정수리에 박혔다. 멧돼지는 멈칫 하더니 총알이 박힌 정수리에서 달빛을 받아 먹물처럼 빛나는 핏물을 뿜어냈다. 성공을 예감하고 일어서려던 임포수는 멧돼지의 눈과 마주쳤다. 임포수가 등을 돌려 옆집으로 도망을 치는 순간 멧돼지도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등을 돌리는 순간 임포수는 보았다. 박혔던 총알이 쏟아지는 피와 함께 튀어 나오는 것을! 멧돼지는 임포수가 올라 있던 초가집 벽들을 뚫어 버리면서 임포수를 쫓았다. 워낙 작은 마을인지라 잠깐 사이 ..

사람의 기억 2023.11.20

임포수와 괴물멧돼지

할아버지께서는 진안고원에서 사냥꾼으로 유명하던 임포수 아저씨 이야기부터 꺼내셨다. 임포수 아저씨가 잡은 괴물 멧돼지 이야기는 동네 꼬맹이들도 다 아는 이야기다. 무슨 연유로 마을로 내려왔는지 모르지만 황소보다 머리하나가 더 큰 멧돼지가 밤마다 마을로 내려와 하루에 한 마리 씩 묶여있는 개는 모조리 잡아먹었다. 풀어 키우던 개들은 낑 소리도 못 내고 다음날 아궁이 안에서 발견되곤 하였다. 마을에 개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우리를 부수고 들어가 돼지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돼지가 돼지를 잡아먹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멧돼지가 사람도 잡아먹게 생겼다며 밤이면 두려움에 떨었다. 소식을 들은 임포수는 멧돼지가 나타나는 마을을 찾아가 멧돼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멧돼지의 흔적은 여기 저기 널..

사람의 기억 2023.11.19

만주로 떠날 준비를 하는 할아버지

낙엽을 그러모으기 위해 오르고 솔방울을 줍고 잔가지를 주우러 오르고 친구들과 연을 날리고 동네 형들과 칡을 캐고 숨바꼭질을 하던 언덕이다. 근 몇 년간은 아버지와 매일 이 언덕에 올랐다. 가을이 오고 매가 돌아오면 다음 해 봄까지 매일 여기에 살았다. 매가 내려앉는다. 우리 집 마당이다. 할아버지께서는 매를 날리고 멍하니 서있는 아버지를 조용히 깨우신다. 아버지를 스치는 할아버지의 손길에서 뜨거운 바람이 느껴진다. 할아버지는 무슨 재미난 구경거리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따라온 사람들을 외면하며 산을 내려가신다. 매사냥에 나선 여느 때와는 너무나 다르다. 매가 사냥을 마치지도 않았고 돌아오지도 않았다. 잘 길들여진 매는 황소 한 마리와도 바꾸지 않을 만큼 귀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도 의아해한다. ..

사람의 기억 2023.11.17

할아버지와 매사냥

할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매사냥에 더 열중하셨다. 집안의 전통으로는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던 매사냥을 어린 아들을 데리고 매일 산으로 들로 나가셨다. 사람들은 어린 아들이었던 아버지에게 매사냥 기술을 전수하기 위함이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매사냥 실력은 할아버지께서 공을 들인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세 해가 지날 무렵이 되자 아버지는 매를 받기 위해 하늘에 갖추어야할 예의를 알게 되었고 매를 받는 방법과 매그물을 짜는 방법을 배웠다. 손재주를 타고 난 아버지는 매의 주인을 알리는 시치미를 만드는 법과 매의 위치를 알려주는 매방울을 만드는 법, 매를 길들일 때 매를 보호하기 위한 도구인 젓갓끈을 엮는 방법들을 단숨에 배워나갔다. 매를 길들이는 일은 할아..

사람의 기억 202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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