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지고 공화국은 고난의 행군을 선포했다. 러시아인민들은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100m 넘는 줄을 서야 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공화국의 사정은 더 심각했다. 굶주림이 인격을 잡아먹었다. 인격을 상실한 인민들은 국경을 넘어 유랑을 선택했다. 공화국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인민들은 초근목피로 목숨을 연명했다. 깡마른 시간은 더디게도 흘렀다. 고난의 행군이 3년째 지속되자 인민들의 경제난을 빠르게 회복한 러시아로 일자리를 구해 떠났다. 중앙당의 보살핌이 미치지 못하는 평안북도와 함경북도 인민들의 삶은 지옥도를 보는 듯 했다. 다행히 외부세계와 멀리 떨어져있는 백도연공동체는 스스로 생산한 식량으로 여유로웠지만 외부에서 들려오는 슬픈 소식들로 마냥 즐거울 수는 없었다. 중앙당의 식량보급이 그나마 이루어지는 평안남도 아랫녘은 그럭저럭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힘겨운 삶을 살아내었다.
진아는 굶주리는 먼 이웃을 위해 바이칼호수에서 백만 마리의 오무를 불러들였다. 바짝 말린 오무는 단백질과 지방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기근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될것이다. 모든 생명에 차별을 두지 않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진아는 마음이 아팠지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마저도 버려야하는 참혹한 기근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현이는 산양 삼천 마리와 돼지 오천 마리를 준비했다. 린이는 생산량이 두 배 이상에 수확시기도 빠른 슈퍼감자와 슈퍼옥수수 씨앗을 준비했다. 신녀님은 조만간에 알혼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신탁을 받았다. 아이들을 포함해 우리 가족 모두가 공화국을 떠나야한다는 신탁이었다. 신녀님께서는 공화국에서 러시아로 가기위한 준비 작업으로 엄청난 양의 식량을 평안도당과 함경도당으로 내려 보내셨다.
봄이 오고 매가 돌아왔다. 할아버지께서는 일선에서 물러나 겨울에는 세계 여러 철학자들과 담론을 나누었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매사냥을 즐기셨다. 매받이를 위해 그물을 쩔고 있는 할아버지의 어께위로 매 두 마리가 내려앉았다. 이런 일이 드물기도 했지만 매를 바라본 할아버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두 마리 매의 꼬리에는 각각 위치추적 송신기와 시치미가 붙어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부랴부랴 매들을 매방으로 들이고 송신기와 시치미를 떼어 살피셨다. 시치미는 분명 진안고원에 살고 있는 아버지의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눈이 맑게 빛났다. 무엇을 할 것인가? 할아버지의 눈에는 총상을 입고 아버지를 만났던 날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드라마처럼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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