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가 끝나갈 무렵 까마귀 떼가 지나가고 매가 돌아왔다. 때가 되면 돌아가고 싶은 고향집처럼 이름표를 달고 북으로 올라갔던 매들이 다시 고향집으로 날아들었다. 다시 돌아온 매는 작년보다 우람해졌고 가슴 털은 색깔이 더 진해지고 풍성해졌다. 해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매라면 수진이(새끼 때부터 집에서 키운 매로 사람을 잘 따르고 야생으로 돌아갈 염려가 없다. 사람의 손을 많이 타서 야생성이 좀 떨어지고 그만큼 사냥능력도 해마다 길들이는 매에 비해 조금 떨어진다.)라 불러도 될 만큼 우리 가족과 한 식구가 되었다. 이제는 매를 답답한 매방에 들이지 않아도 되겠다. 할아버지께서는 닭과 비둘기가 사는 우리 한 칸을 막아서 매가 사는 집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또 한 해가 지나고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두 돌이 되던 해부터 나귀등에 나와 매를 함께 태우고 매사냥을 나가셨다. 나귀는 다리가 짧은 대신 하체가 튼튼해서 산을 오르는데 적합했다. 꿩젖을 먹고 자란 나도 허벅지가 튼실했고 추위도 타지 않았다. 나와 매와 나귀를 이어주시는 할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따뜻하고 조용했지만 금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괴물들은 내동산을 무너뜨리려는 듯 매일 폭약을 터뜨렸고 사람까지 빼앗아가던 치들은 호랑이와 늑대와 여우를 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무 때나 베풀 음식만 준비되면 나가던 매사냥을 마음대로 할 수 없어졌다. 붉은 눈으로 총을 들고 설쳐대는 치들은 매사냥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오발사고로 죽을 수도 있다며 위협했다. 지들이 하는 사냥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오발사고를 가장해 사람들을 해치기에 충분한 성정을 가진 저들의 눈빛은 무서웠다. 그들은 그들의 무서운 눈빛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지만 문득 문득 잔인한 환상이 비칠 때면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동네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할아버지께서는 매사냥을 나가기 전날에는 조그마한 나귀에 쬐끄마한 나를 태우고 장터 국밥집에 들렀다. 국밥집에서는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국밥집에서 듣는 이야기들은 커다란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국물을 닮아있었다. 가마솥에는 소머리가 들어가 삶아지고 파뿌리가, 큰 가시엄나무 토막이, 작은 가시 오가피나무, 단물 감초나무가 둥둥 떠서 자기 이야기들을 떠들어댔다. 할아버지께서는 느릿느릿 국밥집에 앉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후후 불어 식혀가면서 떠 드셨다. 국밥집 가마솥은 삼백예순날 쉬지 않고 끓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렇게 하루도 쉬지 않고 끓었다. 증조할아버지께서 할아버지를 데리고 국밥집에서 드시던 이야기들은 콩떡이네 소가 송아지를 세 마리나 낳았다거나 거창댁네 돼지가 새끼를 열다섯 마리나 낳아서 걱정이 많은데 어디 동냥젖이라도 먹일 어미 돼지가 없겠냐는 둥 그런 시시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들이 전부였다. 국밥집에 칼을 차고 총을 든 자들이 드나들면서 부터는 돈과 죽음이 끓었다. 가마솥에는 여전히 소머리나 돼지머리가 보글보글 천천히 끓고 있었지만 사람들 입으로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들어갔다. 어제는 덕태산 백운동 골짜기에서 집채만 한 호랑이를 잡았는데 너무 무거워 산에서 끌고 내려 올 수가 없어서 가죽만 벗기고 고기는 버려두고 왔다는 이야기를 자랑삼아하는 붉은 눈의 인간의 입으로 소혀가 들어간다. 붉은 눈의 인간들은 큰돈을 벌고 나면 도시로 나가 며칠간 은 잠잠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오늘이 동네 사람들과 하는 마지막 매사냥이라 다짐했다. 혹시나 생길지도 아니 언제가 반드시 생길 참변은 미리 막아야한고 할아버지는 마을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이후로는 숲이 푸르러지기 전에는 산에 들어가지 말라는 당부도 하셨다. 호랑이를 겨누던 총구는 심심풀이로 사람을 사냥하게 된다는 것을 할아버지는 알고 계셨다. 죽음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들은 더욱이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가죽이 벗겨진 호랑이 시체는 배고픈 멧돼지나 독수리들이 먹을 것이고 겨울잠을 자다가 총소리에 놀라 깨어난 다람쥐가 먹을 것이고 산토끼와 오소리가 호랑이를 뜯어먹을 것이다. 산짐승들은 가죽이 벗겨진 호랑이를 호랑이로 알지 못하고 산의 주인을 뜯어먹고 산의 주인행세를 아무나 하겠다고 나설 참이었다. 붉은 눈의 사냥꾼들은 자신들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도 모르고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겠지만 그 악행이 스스로에게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아는 치들은 아무도 없었다. 마을사람들과 하는 마지막 사냥에서 꿩 다섯 마리와 토끼 두 마리를 잡았다. 할아버지께서 날린 매는 산등성이에서 내려오고 아버지의 매는 밭에서 날아올랐다. 두 매는 호흡 하도 잘 맞아 사람들이 할 역할이 없었다. 매들은 여전히 날렵했고 매서운 눈으로 멀리 보고 자세히 보며 하늘을 날았지만 매의 눈으로 세상을 내려다보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늘 말씀 하셨다. 좋은 일도 아무리 슬픈 일도 벌어져야 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하늘이 무너질 일은 없고 벌어진 일들은 모두 우리를 위한 일들이라고! 할아버지께서 오늘을 보셨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매들은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면서 보았다. 악이 극에 달해 하늘에 대고 총질을 해대는 사람들을! 악에 받친 총알은 결국 자신에게 날아오리라는 것을 모르는 괴물들을 어찌해야하나 매들은 깊은 생각에 빠져 허공을 배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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