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가는 길

사람의 기억

외할아버지와 당나귀

솔바위 2023. 11. 2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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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를 돌려 보내야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겨우내 나는 꿩젖을 먹고 자랐다. 워낙 가냘픈 어머니였지만 끼니때마다 올라오는 꿩탕과 꿩만두는 어머니를 살찌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어머니를 살찌우고 남는 꿩고기는 젖으로 흘러 나왔다. 나에게 꿩젖을 먹게 해준 매들은 아버지와 내 이름표를 붙이고는 고향으로 날아갔다.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고 힘든 농사일은 시작되었다. 추수가 끝난 지난 가을 파 놓은 방죽에도 물을 가득 채워두었다. 물을 끌어올 수 있는 골짜기에는 모두 방죽을 만들었고 물이 나는 수렁논에도 방죽을 만들었다. 이제 물 걱정은 한 시름 놓았다. 할아버지께서는 농사일을 직접 해보시면서 농부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일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증조할아버지께서 지어 놓으신 외양간에 소를 가득 늘렸다. 재산을 늘리기 보다는 덕을 나누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할아버지는 집안 어른들과 동네 사람들로부터 배웠다. 덕은 베풀수록 복이 쌓이고 재산은 움켜쥘수록 독이 쌓이는 법이었다. 겨울에 태어나 느긋한 축복을 받았지만 백일이 되는 날은 농사일이 너무 바쁜 시기였다.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백일이 되는 하루만이라도 농사걱정은 접어두고 푹 쉬자며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물론 멀리 사는 친지들은 부르지 않았고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식구들은 일꾼들과 함께 나귀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오셨다.(외할아버지 나귀 이야기 : 우리 집에 드나드는 나귀는 고삐를 잡을 필요가 없다. 당나귀에 비에 덩치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만 사실은 오래 일을 해도 지치지 않고 꾀를 부리지 않는다. 덩치가 큰 당나귀는 당나라에서 수입했다 해서 당나귀인데 외할아버지 나귀는 그냥 우리 나귀이다. 외할아버지는 방앗간을 가지고 있는데 물레방아는 물이 돌리고 연자방아는 나귀가 돌린다. 물건을 나를 때에도 얌전하다. 장터 나귀들은 덩치도 크고 힘이 세어 보이지만 수레를 끌게 하려고 안장을 얹을 라 치면 폴짝폴짝 뛰거나 땅에 드러누워서 코웃음 치기 일이 잦았다. 물론 장터에서 그런 풍경을 보는 것도 재미나기는 했지만 당나귀 주인은 당나귀를 어르고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외할아버지께서 나귀를 타고 여유롭고 의젓하게 그 옆을 지날라 치면 당나귀는 벌떡 일어나 코를 벌름거렸다. 할아버지는 코를 벌름거리는 당나귀에게 때리는 시늉을 하면 당나귀는 머리를 수그려 피하는 시늉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장마당에서 펼쳐지는 마당극을 보는 것보다 재미난 풍경이었다. 머리를 수그리고 있는 당나귀에게 안장을 얹는 일은 쉬워서 당나귀 주인은 이 때다 싶어 얼릉 당나귀에게 안장을 얹어버린다. 외할아버지 나귀는 똑똑하고 착하고 의젓하고 특히나 주인을 잘 따른다. 외할아버지 나귀는 방앗간에서 출발할 때 방향만 잡아주면 고삐를 움켜쥘 필요가 없다. 삼거리가 나오면 양 옆을 살펴보고 길을 간다. 할아버지께서 아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라도 나누려고 생각을 하면 나귀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선다. 인상이 좋지 않은 일본 놈이나 순사를 만나면 코를 팽 풀고 지나간다. 어린아이나 노인들이 수레를 달구지를 못 보고 바투 다가오면 알아서 멈추었다가 길을 간다. 외할아버지 나귀는 길을 잘 알고 사람을 가려 볼 줄도 알고 웃기면 웃고 비웃고 싶으면 비웃을 줄도 안다. 나귀는 외할아버지가 속삭이지 않아도 큰 귀로 다 듣고 알아서 외할아버지를 편하게 보살핀다. 외할아버지 곁에는 강아지처럼 따르는 나귀가 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나귀를 타고 외가 식구들과 일꾼들은 나귀 세 마리가 끄는 달구지 세 개에 나누어 타고 새끼나귀 세 마리를 따르게 하셨다. 나귀들은 자기 집을 찾아오듯 없는 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나귀들과 외할아버지 식구들이 들어오니 넓은 마당이 꽉 찬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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