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데미샘
데미샘에서 천상데미쪽을 바라보면 온통 바위와 돌들로 이루어진 너덜겅이다. 저 돌들에서 방울방울 떨어진 물방울들이 모여들여 제법 큰 샘을 이루었다. 일반적으로 돌너덜겅이, 너덜지대에는 나무가 자라지 못하지만 물이 나는 데미샘 주변에는 굵직한 아름드리나무들이 돌들을 품고 자라고 있다. 이끼를 키우는 돌들은 물을 품고 있다가 물을 내놓는 것인지 돌들이 물을 만들어 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끼를 품은 돌들은 하나같이 물방울을 맺어 떨구고 있다.
데미는 더미를 이르는 말이고 돌더미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을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하늘이 내려준 생명수로 보았을 것이다. 데미샘 위쪽에는 천상데미라 불리는 작은 봉우리가 있다. 천상데미는 하늘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 아래에 있는 샘, 데미샘! 데미샘을 산을 오르내리며 살던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일 테고 천상데미는 조선후기에 천주교 박해를 피해 깊은 산골로 들어온 사람들이 아랫마을에 교우촌을 이루어 살았다니 그 분들이 붙여준 이름일 가능성이 높겠다.
데미샘을 바라보고 왼쪽에는 선각산이 있고 오른쪽에는 팔공산이 있다. 보통은 이처럼 봉우리에 짧은 이름이 있기 마련인데 '천상세계로 올라가는 봉우리'라 하니 뭔가 신성한 기운이 느껴진다. 데미샘에는 섬진강 발원지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기는 하지만 데미샘이 섬진강 발원지로 인정받은 역사는 아주 짧다.
옛날 사람들은 섬진강 발원지를 데미샘과 비슷한 높이에 있는 팔공산 어디쯤으로 봤지만 팔공산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들은 샘을 이루지 못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섬진강의 발원지를 마이산으로 기록되어있다. 마이산은 오랜 세월 신성한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으니 나라의 복을 비는 마음에서 섬진강의 발원지로 정하고 싶었을 게다. 하지만 섬진강 하구에서 가장 먼 곳에 번듯한 샘으로 존재하는 것은 데미샘이 유일하다.
샘물은 흐르면서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돌 틈을 흘러 내려가다가 오계치에서 내려온 물과 만난다. 여기서부터는 수량도 풍부해지고 요란한 소리로 바위를 타고 넘으며 작은 폭포를 이루기도 하고 모래를 실어 나르면서 비탈 밭과 다랑이 논 곁을 빠르게 지나간다. 박해를 피해 깊은 골짜기로 모여든 사람들은 이 물로 농사를 지으며 지난한 삶을 이어갔으리라.
골짜기의 생명을 기르며 흘러내린 물은 좁고 긴 들을 만나고 팔공산과 성수산에서 시작된 물과 하나가 된다. 아직은 수량이 작아 강이라 부르기는 뭐하지만 여기서부터는 골짜기 이름을 버리고 섬진강이라 불린다.
섬진강은 원래 모래가 많다 하여 모래내 또는 다사강으로 불리다가 고려 우왕 11년(1385)에 왜구가 섬진강 하구 하동포구에 나타났을 때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만으로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있어, 강이름에 두꺼비'섬(蟾)' 나루'진(津)'자를 붙여 섬진강이 되었다고 한다. 강을 따라 걷다 보면 너럭바위들이 많은 상류인데도 군데군데 모래톱이 생겨있는 것을 봐서는 섬진강은 모래내로 부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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