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억

이야기 셋 자기 굽는 마을

솔바위 2023. 11. 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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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셋 자기 굽는 마을

성수산 서남쪽 사면은 흙이 깊고 완만하다. 골이 깊어 물이 풍부하고 산이 깊어 땔감 구하기가 쉽다. 산비탈이 끝나고 평평한 논과 밭이 시작되는 지점에는 자기를 만들기에 좋은 찰진 흙이 무궁무진하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호리병 모양의 작은 동네 두원리에 질 좋은 자기를 생산하는 자기소가 있다고 적혀있다.

600년 전부터 살기 시작했다는 최양 선생의 후손들과 자기소는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200년 전 천주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두원리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123년 전에 공소를 세우고 신앙을 지키며 살아갔다. 600년 전에는 자기를 만들었고 동네 어르신의 기억에는 60여 년 전까지 사기그릇을 만드는 가마가 있었다 한다. 천주교 공소는 성당이 너무 멀어 성당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지은 본당의 분소이다. 신부는 상주하지 않았고 가끔 보좌신부가 방문해서 예배를 보았다. 평소에는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인근 동네에 사는 신자들까지 모여 기도를 올리고 바깥 세상소식을 나누었다.

공소의 주된 역할 중 다른 하나는 신자공동체의 경제활동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어갈 것인가를 논의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하고 산중으로 숨어든 교인들은 옹기를 만들거나 사기를 만들어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는 옹기를 만들어야했고 누구는 옹기를 싣고 장터로 나가야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작은 농지에 농사를 지어야했다. 생존이 절박했고 신앙에 목마른 사람들의 공동체는 공소를 중심으로 아름답게 이루어졌다. 두원공소는 지금도 남아있지만 공소를 세우고 숨어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은 멀리 돌아가 이야기를 찾을 길이 없다. 존재는 사라졌지만 존재했던 기억은 자그마한 공간에라도 남아있어 다행이다. 다만 천주교를 집안 전통으로 또는 조상들의 유산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남아있다.

두원리에서 내려오는 물은 그리 큰 비가 아니어도 누런 흙탕물을 안고 흐른다. 섬진강 본류와 만나는 곳에서 보면 물 색깔이 확연히 다르다. 큰물과 큰물이 만나는 이곳에 작은 물레방앗간이 있었다. 골짜기 곁에 있는 자그마한 논들에서 키운 나락들은 자그마한 물레방앗간에서 쌀이 되어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이어주었다. 50대 청년들의 기억에 물레방앗간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그리 멀지 않은 어제까지도 물레방아는 돌아갔겠다.

방앗간이 있던 자리 맞은편에는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숲을 이루며 살아간다. 느티나무 숲 아래에는 나무의 나이와 비슷한 소담스러운 정자와 최양선생 유허비가 있다. 유허비가 세워진 시기가 1871년이니 정자와 나무들도 대략 그 정도 나이를 먹었겠다. 느티나무 아래에 정자가 없었다면, 정자를 두른 느티나무가 없었다면 뭔가 크게 빈 듯 허전하겠다. 물과 물이 만나는 곳에서는 사람과 사람도 만나기 마련이다. 정자에서는 방아를 찧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만나기도 하고 윗동네 아랫마을에서 밤마실 나온 처녀 총각이 만나 물레방앗간을 드나들기도 했다. 시원한 정자는 150년 전부터 지금까지 무더위를 피해 놀러온 사람들의 쉼터로 잘 쓰이고 있다.

느티나무 숲 건너에는 300년 가까이 살아온 우람한 소나무가 살고 있다. 사람들이야 몇 세대가 오고 가기를 반복했겠지만 소나무는 그저 묵묵히 오고 가는 세월들을 지켜만 보고 있다. 그리운 세월을 간직한 소나무 앞에는 보호수라는 푯말이 서 있지만 주변에는 쓰레기가 날아다니고 나무 곁에 있는 철창에는 자기 똥을 밟고 사료를 먹고 자기 똥을 베고 자는 강아지들이 서럽게 짖어댄다. 아무리 사유지라 해도 참 너무 천대 받는 느낌이 들어 서글프다. 유명한 문화재와 쓰임이 잦은 문화유산들은 어느 정도 관리가 되지만 마을 구석구석에 깃들어있는 작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문화재와 유산들은 버려지고 외면당하기 일쑤다. 소외받는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직업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반송리 소나무를 지나고 나면 산은 멀리 물러나 낮아지고 들은 갑자기 넓어진다. 추수를 끝낸 콩밭에는 차갑고 푸른 하늘을 날던 까마귀 떼가 내려앉는다. 사람들의 추수시기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까마귀들은 철이 든 철새들이다. 시커멓게 내려앉은 까마귀들 무리 속에 하얀 깃털이 섞인 새끼까치 한 마리가 들어있다.

까마귀라 하기는 새하얀 깃털이 너무 도드라지고 까치라 하기 에는 까만 깃털이 너무 많다. 까마귀와 까치는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새들인데다가 철새와 텃새가 함께 다니기도 힘들 텐데 한 자리에 모여 앉아 먹이를 나누고 있다. 날이 더 추워지면 한 식구를 이룬 까마귀와 까치는 바다를 건너 우도에 모일 것이다. 우도 땅콩은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온 까마귀들에게 기운을 회복시켜주는 최고의 먹이다. 텃세를 부리지 않는 텃새와 추수의 철을 아는 철새가 함께하는 여행이라니 이보다 특별한 여행이 세상에 있을까? 무리와 다름은 다르지 않고 틀렸다고 비난 받지 않는 특별한 여행은 유배를 강요받거나 스스로 숨어 사는 평온함을 선택했던 사람들이 살아가던 백운에서 시작함이 마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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