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억

이야기 둘 만육 최양선생 돈적소에서 내린 물

솔바위 2023. 11. 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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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둘 만육 최양선생 돈적소에서 내린 물

섬진강 발원지를 데미샘으로 정하고는 있지만 팔공산과 성수산에서 시작된 물도 발원지라 할 만큼 멀고 깊고 높다. 팔공산 아래에는 세상 사람들을 피해 숨어 살다가 생을 마감하신 최양 선생 돈적소가 있고 그 근처에서는 물이 시작된다. 깊은 동굴의 끝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은 샘을 이루지 못하고 자갈밭으로 스며들어 버리지만 물이 시작되는 곳이기는 맞다. 여기에도 샘을 파 놓는다면 물이 고이기는 하겠다.

동굴이 위치한 곳이 해발 850m이고 진안에서 장수로 넘어가는 고개가 860인데 고갯마루에서 선각산쪽으로 100m정도 걸어가면 장수쪽, 사면에도 샘이 있다. 틀림없이 물이 솟아나는 샘이긴 한데 샘터를 벗어나 흐르지는 못한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은 8부 능선 즈음에 샘터를 너머서지 못하는 발원지의 발원지가 수두룩하겠다. 샘을 벗어나지 못하는 샘물이라니 왠지 은둔의 시작은 이 물들에서 기원했는지도 모르겠다.

백운면 골짜기는 저마다 사연을 품고 있다. 은둔의 삶, 숨어사는 삶을 즐기기에 적합한 골짜기를 덕태산, 선각산, 팔공산, 성수산이 품고 있다. 동학농민혁명이 끝나고 관군에게 쫓겨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골짜기에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고 천주교 박해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 그랬고 고려의 신하로 충절을 지키다가 돌아가신 최양선생의 가족들이 깊은 산중에 은거하며 살았다. 어쩌면 빨치산으로 산에 살다가 마을로 내려와 정체를 숨기고 살아남은 사람도 있겠다. 그렇게 흰 구름으로 장막을 두른 백운은 숨어살기에 참 좋은 곳이다.

돈적소에서 출발한 외로운 물방울은 작은 물줄기들을 만나고 작은 계곡을 이루다가 성수산에서 내린 물줄기와 하나가 되어 제법 큰 시냇물이 된다. 눈으로 대충 보아도 데미샘에서 내려오는 물 보다 수량이 많다. 팔공산과 성수산에서 내려온 물들은 신암저수지에 가라앉는다. 저수지 바닥에는 최소 600년 전부터 있던 절이 있다. 최양 선생께서 돈적소에 숨어들어 지낸 마지막 3년을 물에 잠긴 절의 스님들께서 뒷바라지를 하셨다. 저수지에 고여 흐르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물은 그때를 기억할까?

저수지 밑으로 숨어드는 물들은 과거의 물들을 밀어 올려 저수지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수지에서의 갇힌 삶을 벗어난 물은 데미샘에서 내린 물과 만나 긴 여행을 다시 시작한다. 물들은 점점 속도를 늦추고 산 밑을 휘감아 돌기도 하고 가끔 완만한 산비탈 아래에서 너른 논과 밭을 만난다. 성수산과 선각산은 작은 물줄기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물에 물을 보탠다. 지난여름에는 여러 번 큰물이 일었다. 여름에 일어난 큰물은 물가 여기저기에 모래톱을 만들어놓았다. 모래놀이를 좋아하는 아가와 고양이를 만들고 염소도 만들고 토끼도 만들다 보면 부드러운 모래 밑으로 뭉쳐지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는 모래점토가 나온다. 모래점토는 인형을 만들며 놀기에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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