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억

외할아버지의 백일선물 사금을 채취하게 된 사연

솔바위 2023. 11. 2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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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할아버지는 백일 된 할아버지를 안고 외할아버지를 반기신다. 마당과 사랑방과 대청마루에서는 평범하지만 맛있는 음식들로 상이 차려졌다. 백일잔치를 핑계로 일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려는 할아버지의 뜻이다. 할아버지의 뜻을 잘 아는 동네 사람들은 고맙고 맛있게 음식을 먹으면서 나의 백일을 축복해주었고 겉치레를 싫어하는 할아버지의 성정을 잘 아는 집안 어른들과 외할아버지 식구들도 만족해하며 잔칫상을 즐겼다. 외할아버지는 젊은 할아버지께 특별한 선물을 가지고 오셨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촘촘하게 짠 무명천으로 만든 묵직한 자루를 하나 건네신다. 묵직한 자루의 사연은 이러했다. 내동산 금광에 금맥이 터져서 일본 놈들이 난리가 났다. 순도가 높고 굵직한 금맥이었다. 순도가 너무 높아서 가공을 할 필요도 없었다. 금맥을 발견한 것은 내동에 사는 광부들이었지만 금을 모조리 가져가는 자들은 괴물들이었다. 괴물들은 사람을 믿지 못했고 광부들을 다 내쫓았다. 조선인 광부를 쫓아낸 자리는 오랜 경험을 가진 일본인 광부로 채워졌다. 캐내고 캐내도 끝이 없는 광맥에 눈이 먼 괴물들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러다가 사단이 났다. 조선의 땅 속사정을 모르던 일본 광부들은 수맥을 건드리고 말았다. 내동산은 바위로 만들어진 산이지만 치맛자락으로 펼쳐진 절벽 안에는 큰물을 머금고 있어 7부 능선에 폭포가 있을 정도였다. 내동 광부들은 자기 살고 있는 뒷동산 사정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일본인 금광전문가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괴물들이 하는 일이 늘 그러하듯 탐욕의 정과 망치와 다이너마이트는 수맥을 터트렸고 금광은 무너졌다. 일본인 금광전문가들은 금덩어리에 깔려 죽었고 겨우 시신을 수습하기는 했지만 물이 너무 많이 흘러나와 이쪽 금광은 폐쇄해야만 했고 반대편에서 다시 굴을 파야했다. 금상첨화, 설상가상으로 봄장마가 와서 금광에서 흘러나오는 큰물은 멈추지 않았다. 금광 밑으로는 가제나 몇 마리 살 만큼 졸졸졸 흐르던 물길이 장마철에나 흐를 법한 큰 물길이 되었다. 금맥을 찾고도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고도 광부들은 참아야했다. 괜히 항의 했다가는 매를 맞거나 어디론가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다. 억울해도 어디 하소연 할 곳이 없었던 광부들은 도르메방앗간 사랑방에 찾아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하소연을 했다. 그 이야기는 고스란히 사랑방 옆에 누워 낮잠이나 자고 있던 나귀의 귀에 들어갔고 외할아버지도 알게 되었다. 나귀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날 외할아버지를 태우고 내동산에서 내린 물과 섬진강이 만나는 도르메방앗간 건너편 강가로 산책을 나갔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가 수심이 낮은 곳에서는 운교리 사람들 몇 명이 다슬기를 잡고 있다. 나귀는 물을 마시겠다며 달빛을 받아 물 속에서 반짝이는 노란 모래밭에 외할아버지를 내려 드렸다. 방앗간으로 물을 대기 위해 야트막하게 쌓아놓은 보를 넘지 못한 무거운 모래밭이다. 목을 다 축이고 배가 부르게 물을 마셔도 눈치 없는 외할아버지는 보름달만 바라보고 무슨 생각에 골몰해있다. 나귀는 강물에 코를 풀고 침을 뱉었다.

  황금을 돌같이 여기는 친구의 성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 나귀는 무심한 주인을 다시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밤부터 도르메방앗간 일꾼들은 다슬기 잡이에 나섰다. 사랑방 헛간에서 꾸벅 졸던 나귀는 친구의 의뭉스러움에 네 다리를 하늘로 쳐들고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었다. 달이 지기 전에 다슬기를 잡아내야한다. 달이 지면 노랗게 빛나는 다슬기를 찾을 수가 없다. 다슬기 잡이는 보름달이 반달로 바뀔 때까지 7일 동안 계속되었다. 달이 뜨고 해가 지면 시작해서 새벽별이 뜰 때까지 열심히 주워 모았다. 낮 동안에 일본인 금광전문가들은 내동산 반대쪽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고 땅굴을 팠고 밤에는 드르메방앗간 일꾼들이 강가에 나가 다슬기를 잡았다. 며칠 동안은 매일 비슷한 양의 노랗고 무거운 다슬기가 내동산 무너진 금광에서 떠내려 왔다. 일주일이 지나자 하루가 다르게 강물이 따뜻해지더니 다슬기들은 산란기가 되었는지 바위아래 돌 밑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았다. 외할아버지를 주시하고 있던 순사들과 일본 놈들은 외할아버지가 일꾼들을 놀리기 싫어 밤에도 일을 시킨다고 생각했다. 사람이라는 동물 중에는 자신들의 수준에 맞게 상상하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바보 멍청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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