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기억

임포수와 괴물멧돼지

솔바위 2023. 11. 19.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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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께서는 진안고원에서 사냥꾼으로 유명하던 임포수 아저씨 이야기부터 꺼내셨다. 임포수 아저씨가 잡은 괴물 멧돼지 이야기는 동네 꼬맹이들도 다 아는 이야기다. 무슨 연유로 마을로 내려왔는지 모르지만 황소보다 머리하나가 더 큰 멧돼지가 밤마다 마을로 내려와 하루에 한 마리 씩 묶여있는 개는 모조리 잡아먹었다. 풀어 키우던 개들은 낑 소리도 못 내고 다음날 아궁이 안에서 발견되곤 하였다. 마을에 개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우리를 부수고 들어가 돼지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돼지가 돼지를 잡아먹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멧돼지가 사람도 잡아먹게 생겼다며 밤이면 두려움에 떨었다. 소식을 들은 임포수는 멧돼지가 나타나는 마을을 찾아가 멧돼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멧돼지의 흔적은 여기 저기 널려있었다. 워낙 무거워서 어딜 가나 발자국은 선명했고 나무와 나무 사이가 좁은 길을 통과할 때는 나무가 쓰러졌다. 메마른 땅에도 발자국이 깊게 패인 것을 보면 그 무게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주로 초식을 하고 단백질이 부족해지면 지렁이 정도를 잡아먹는 멧돼지가 이 정도로 무거워지려면 고기를 주식으로 먹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멧돼지가 고기를 먹었으리라는 추측에 생각이 미치자 붉은 눈의 사냥꾼들이 떠올랐다. 붉은 눈의 사냥꾼들은 가죽을 얻기 위해 호랑이와 늑대와 여우를 사냥하고 가죽만을 벗겨 산을 내려오고 고기는 숲에 버려둔다고 했다. 눈이 내려 먹을 것을 찾기 힘들어진 멧돼지는 우연히 호랑이 고기를 맛보았을 테고 고기 맛에 길들여진 멧돼지는 늑대고기도 찾아 먹다가 산에 버려진 고기가 떨어지자 마을로 내려왔을 것이다. 멧돼지가 잡아먹은 동물들을 살펴보니 괴물멧돼지는 산에서 가까운 집에서 시작해 먼 집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발자국의 깊이와 크기로 봐서는 황소보다 무거울 테니 천근은 족히 넘어보였다. 덩치도 황소보다 클 것이고 하니 맨 땅에서 마주 했다가는 잡아먹히기 쉽겠고 심장을 맞춘다면 멧돼지를 잡을 수는 있겠지만 성난 멧돼지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은 매한가지 일게다. 제일 좋은 방법은 정수리를 정확하게 맞춰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것이고 차선은 심장을 맞춘 다음 멧돼지가 쓰러질 때까지 도망을 치는 방법인데 둘 다 어렵기는 매 한가지다. 괴물멧돼지 사냥을 포기하자니 마을이 위태롭고 멧돼지를 처리하려니 임포수의 목숨이 위험했다.

  임포수는 괴물멧돼지와 맞설 결심을 하고는 할아버지를 찾아와 처자식을 부탁했다. 임포수의 탁월한 능력을 알고 있는 할아버지께서는 임포수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시며 임포수가 진안고원에서 떠나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하신다. 할아버지께서는 새 옷을 내어 주시며 사냥에 성공하면 입고 있던 옷은 찢어서 멧돼지 피를 잔뜩 발라 총과 함께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군산으로 가서 상해로 넘어가는 배를 타라고 했다. 머지않아 일본군들은 포수들의 총을 빼앗거나 군인으로 차출해갈 것임을 할아버지는 알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임포수가 괴물멧돼지 사냥에 성공하리라는 것도 알고 계셨다. 상해에 가 있으면 할아버지께서 직접 찾아가시거나 나라를 되찾으면 그 때나 만나자는 약속을 하셨다. 괴물멧돼지를 사냥하는 날 임포수는 마을사람들을 이웃 마을로 피신시켰다. 혹여나 사냥에 실패해 성난 멧돼지가 닥치는 대로 사람을 해칠까봐 걱정이 되어서 이기도 했고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없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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