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냥을 나가다.
어르신이 매에게 몰두해 있는 사이 도르메 방앗간에는 식구가 늘었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셨을 때에도 그랬듯 겨울이 다가오면 방앗간 사랑방에는 춥고 배고픈 겨울을 나려는 손님들이 찾아든다. 방앗간 식구들은 행색이 추레한 손님들을 꺼려하지 않는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어르신의 지엄한 당부가 있었기에 방앗간 식구들은 배고픈 손님들에게 따뜻한 밥과 잠자리를 내어준다.
방앗간 어르신께서는 낯선 사람에게는 최대한의 친절을 베풀어 맞이하고 적당한 거처가 정해질 때까지는 절대로 쫓아내지 말라 하셨다.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을 어르신의 아들이 맡았고 손님들을 극진히 대접하는 일은 같은 처지로 방앗간에 들어왔던 일꾼들이 했다. 행색을 떠나 기운이 거칠고 눈빛이 떨리는 이들은 손님을 맞는 어르신 아들의 따뜻한 기운에 눌려 방앗간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며칠간 따뜻한 밥과 잠자리로 몸을 회복한 손님들은 방앗간 식구들과 함께 내년 농사를 위해 거름을 내고 산으로 들어가 겨울을 날 땔감을 해오거나 낙엽을 모아 밭으로 나르는 일을 했다. 도르메 방앗간에서는 겨울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았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은 대부분 순하고 착했다. 그중에 일하기 싫어하는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떠나고 돌아오지 않았다.
하늘은 차갑게 빛나고 바람이 멈추었다. 매사냥을 나가기에 좋은 날이다. 아버지께서는 매사냥을 나가지 말아야하는 날에 대해 늘 당부하셨다. 공을 들여 매를 길들였어도 우중충한 날이나 어둑어둑 해지는 시간에 사냥을 나가면 매를 잃게 되니 조심하라 하셨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도 마찬가지다. 대숲에 바람이 일어 대나무 끝이 춤을 추면 하늘에는 기류가 생긴다. 매와 독수리들은 기류가 생기는 날을 좋아한다.
기류를 타면 힘을 들이지 않고도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숲이 요란하게 춤을 추는 날 매사냥을 나가면 매는 봉받이와 교감하던 보이지 않는 끈을 끊고 기류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날아가 버린다. 사랑방에 들어와 있는 손님들과 방앗간 식구들만으로도 매사냥을 나가기에 족하지만 방앗간 어르신은 일부러 동네 사람들에게도 기별을 해 놓았다. 젊은 방앗간 식구들에게는 풀숲에 숨어있는 꿩을 날아오르게 하는 떨이꾼 역할을 맡겼다.
동네 사람들과 아들에게는 매가 사냥에 성공해서 날아가는 방향을 감시하는 배꾼 역할을 주었다. 방앗간 어르신은 매를 비단으로 만든 매보자기에 싸서 산등성이로 오른다. 처음 매를 받았던 곳의 뒷산이 오늘 사냥하는 장소다. 매들은 하늘을 집삼아 자유롭게 살아가지만 하늘에 경계 아닌 경계, 보이지 않는 경계를 두어 다른 매와 불필요한 영역다툼을 하지 않는다. 방앗간 두툼한 누비옷에 챙이 짧은 갓을 쓰신 방앗간 어르신은 휘적휘적 능선을 타고 산 중턱까지 올라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 서신다. 어르신의 팔뚝위에 올라앉은 매는 높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로 사냥준비가 끝났음을 산 아래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알린다. 떨이꾼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막대기로 풀숲을 두드리면서 들판을 지난다.
풀숲에 숨어 있던 꿩 서너 마리가 날아오른다. 소나무 아래에서 매의 눈으로 들판을 내려다보던 어르신과 매는 쩌렁하는 방울소리와 함께 꿩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간다. 눈 깜짝할 사이에 꿩을 움켜쥔 매는 장애물이 없는 들판으로 내려앉는다. 사냥감을 수거하는 일은 매와 친분을 쌓은 어르신의 아들이 해야 한다. 매는 먹이욕심이 많아 잡은 먹이를 뺏기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고 친분이 없는 사람이 사냥감을 찾으러 오면 놀라서 달아날 수도 있다.
방앗간 어르신의 아들은 올 겨울 매사냥을 위해 매와 눈을 맞추고 고기를 뜯어 먹이로 주는 일을 했다. 아들은 미리 준비한 메추라기 고기를 매에게 주고 꿩을 받아 방앗간 식구들에게 건넨다. 고기를 다 먹은 매는 어르신의 휘파람 소리에 다시 산으로 날아오른다. 이번에 받은 매는 1년생 초진이로 기운이 세고 날렵해서 여러 번 사냥을 해도 힘이 남아돌겠다.